기획팀 양은란 사원, 작곡가 김형석의 멜로디에 흠뻑 빠져 들다!!
솔리드 <이 밤의 끝을 잡고>, 김건모 <첫인상>, 박진영 <너의 뒤에서>….
우리가 울고 웃던, 사랑에 상처받고 달뜨기도 했던 추억이란 시간 속에
그의 노래는 참 많이도 스며 있습니다.
김형석 특유의 감성을 담고 공식적으로 등록된 노래만 1,000여 곡.
'한국 대중음악계의 마에스트로'란 칭호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그를
기획팀 양은란 사원이 만나 보았습니다.
한때 유명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가수의 꿈을 키운 적이 있던 그녀이기에
그날의 인터뷰는 길고 또 깊었습니다...
양은란● 최근 다양한 활동으로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
감사합니다.
명실상부 한국 대중음악계 최고의 작곡가신데 처음 '작곡은 내 운명'이라고
생각한 건 언제였나요?
김형석● '최고'가 아니라 '최고령'이죠(웃음).
아버지가 음악 선생님이고,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셨어요.
특히 어머니가 안방, 작은방, 거실에 피아노를 한 대씩 두고 피아노를
가르치셨거든요.
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는 환경에서 성장했고, 저도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쳤죠.
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부모님이 피아노를 못 치게 하셨어요.
음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척박한 길인지 잘 알고 계셨으니까.
그래서 그만뒀냐고요? 아니죠.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.
피아노를 치기 위해서. 대학교도 부모님 몰래 음대에 지원하기는 했는데,
너무 만만히 본 거죠. 깔끔하게 떨어졌어요.
양은란● 한양대학교에서 작곡 전공하신 것 아니에요?
김형석● 재수해서 들어간 거예요. 당시 음대 보내 달라고 얼마나
떼를 썼는지 몰라요. 단식투쟁까지 했다니까.
양은란● 하하. 고등학생 김형석의 단식투쟁하는 모습, 굉장히 귀여웠을 것
같은데요? 그럼 첫 곡을 만든 건 언제였나요?
김형석●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가수 유재하 형을 만났어요.
학교 선배였는데, 그 분을 만나면서 대중음악이 너무 좋아진 거예요.
대학교 4학년 때 처음 타인에게 제 곡을 주게 됐고, 그게 바로 김광석 형의
'사랑이라는 이유로'에요. 제 처녀작이죠.
양은란● 당시 곡을 완성했을 때의 기분과 요즘 곡을 완성할 때의 기분이
사뭇 다를 것 같아요.
김형석● 물론이죠. 그때는 내 안에서 뭔가 튀어나와서 곡을 썼다면 지금은
대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.
무슨 말이냐면, 요즘은 가수들에게 있어 기획이 강화된 시대잖아요.
패션, 춤, 마케팅 등 노래외적인 요소들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
가수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 사람이 스타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요.
그러니까 난 일종의 설계자인 거죠, 요즘은 그 점에 있어 나 자신에게 미안할 때가
많아서 종종 영화 음악과 뮤지컬 음악을 만들어요.
날 위해 음악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위해서.
양은란● 수많은 명곡을 작곡하셨어요.
등록된 것만 1,000곡이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,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
이렇게 많은 곡을 꾸준히 쓸 수 있었던 노하우가 있을 듯합니다.
곡이 써지지 않을 때도 있었을 텐데요.
김형석● 지금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.
나를 불완전하게 만드는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.
이름이 알려지고, 시스템이란 게 생기면서 감성적으로 편한 부분이
생기는 게 사실이거든요.
문제는 그렇게 되면 잔머리만 늘어요.
예술 하는 사람과 비즈니스맨은 달라야 하는데 외줄타기를 잘하지 않으면
별반 다를 게 없어지는 거죠.
나이가 들수록 그걸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.
그러니까 너무 편해지지 않게 일부러 저 자신과 주변 시스템을 조금은
불완전하게 만들어 놓는 거예요.
오케스트라를 쓸 때 컴퓨터 대신 연필을 사용해 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.
양은란● 음악 아카데미 k-note 운영, 한국예술원의 실용음악학부장,
김형석-박칼린의 미니콘서트, 그리고 각종 방송까지 요즘 활동영역이
무척 넓은데 그중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?
김형석● 당연히 작곡이죠. 방송은 사실 재미없어요.
하루 종일 녹화해서 30분, 1시간 방송되니까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거든요.
오랫동안 알고 지낸 PD들이 부탁하면 거절하지를 못해 출연하는 거죠.
열심히 살다 55세가 지나면 어디 조용한 데 파묻혀서
달달한 음악이나 연주하며 살고 싶어요.
양은란● 얼마 전에는 MBN <더 듀엣>이라는 프로그램도 시작하셨어요.
가수, 배우, 작곡가가 팀을 이뤄 무대를 선보인다는 콘셉트가 특이한데 어떠세요?
주영훈, 이경섭, 돈스파이크 등 내로라하는 작곡가들도 참여하는 탓에
은근히 자존심 대결도 펼쳐질 것 같아요.
김형석●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작곡가들끼리 너무 친해요.
또 곡 작업도 워낙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 경쟁 의식은 전혀 없어요.
오히려 서로 "야, 오늘 좋더라"며 칭찬해주는 분위기?
가수와 배우들은 경쟁을 하지만 작곡가들끼리는 즐기며 노는 분위기예요(웃음).
양은란● 그동안 많은 가수들을 프로듀싱 했는데,
'이 사람은 정말 최고다'라고 생각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살짝 귀띔해주세요.
김형석● 한 명을 꼽기는 너무 어렵고, 'Top5'로 할게요.
먼저 김조한은 라이브가 정말 신나요.
공연을 하면 연주자들도 그냥 놀면서 할 정도로.
성시경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음색이 좋은 가수죠.
옆에서 노래 부르는 걸 듣고 있으면 그냥 살살 녹아요.
임재범은 말할 필요가 없죠. 노래를 어찌나 잘하는지,
노래 듣다가 제가 피아노 연주 박자를 놓친 적도 있어요.
박정현은 정말 꾀꼬리예요. 멜로디 표현이 너무 자유스럽고,
그러면서도 그 안에 나름의 구조가 잡혀 있죠.
김건모는 목소리 자체가 굉장히 스트레이트한 사람이에요.
공연을 하면 가수든 연주자든 틀릴 때가 있기 마련인데,
김건모는 한 번을 안 틀려요. 두 시간 반짜리 공연을 녹음한 적이 있는데
연주만 다시 녹음하고, 노래는 그대로 썼을 정도죠.
안타까운 건 이런 아티스트들의 가치가 오롯이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란 거예요.
아이돌 시장이 워낙 커지고 패키지화됐잖아요.
그래도 다행인 건 <나는 가수다>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것.
그걸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란 거지.
아, 이렇게 다양한 감성과 낭만이 존재하는구나,
이렇게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존재하는구나, 하면서.
진열대에도 살 게 많아야 고르는 거잖아요.
다양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.
양은란● 음반 활동은 다시 안 하시는 건가요?
2005년 '재미있게 놀고 싶다'는 이유로 '포터블 그루브나인'이라는
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잖아요.
김형석● 생각은 많아요. 홍대에서 공연도 해보고 싶고,
실제 음반을 기획 중이기도 해요.
포터블 그루브나인으로 활동할지, 아니면 다른 가수들과 뭉치게 될지는
확실치 않지만요.
윤종신처럼 매달 한 곡씩 낼 수도 있어요(웃음).
양은란● 최근에는 회사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즐기게 된 것 같아요.
저희 회사만 해도 기타 동호회, 직장인 밴드 등 음악 관련동호회가
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.
조금 추상적인 질문이기는 한데, 음악을 제대로 즐기는
보다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?
김형석● 듣는 게 아니라 따라 부르고 연주하는 적극적인 흥얼거림이
중요한 것 같아요.
난 회사생활을 안 해봤지만 물 흐르듯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삶에서
음악은 가장 보편화된 일탈 도구일 텐데,
이왕이면 스스로 참여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즐기라는 거죠.
확실히 재충전되도록.
양은란● 사실 저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1년 정도 했어요.
가수의 꿈을 가진 적이 있어서인지 요즘 목마름을 좀 느끼는 중이죠.
김형석● 정말? 그럼 노래 잘 하겠네~
양은란● 아니에요. 잘 하는 사람이 워낙 많은걸요.
한때는 가수의 꿈을 가졌지만, 이제는 입사 3년 차의 직장인으로,
언젠가 영향력있는 여성 CEO가 되겠다는 꿈을 새로이 가지게 됐어요.
그래서 아까 하셨던 말씀 중에 '나를 불완전한 상태로 만든다'는 게
무척 가슴에 와닿았고요.
제 꿈을 이루기 위해 저도 스스로를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거든요.
김형석● 나 역시 놓치는 게 많아요.
다만, 호기심과 욕심 때문에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
'내 천직은 작곡'이라는 사실은 항상 잊지 않아요.
은란 씨도 지금의 열정을 간직하고, 죽어라 한 길만 가다 보면
반드시 꿈을 이루게 될 거예요.
가수를 하기 위해 보낸 시간조차도 어떻게든 은란 씨 인생에 도움이 될 테고요.
난 세월이 주는 보상이 있다고 믿거든. 그러니까 항상 꿈을 잃지 말고 힘내도록 해요.
응원할게요.
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사보 'On' 37호----------------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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